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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마술사에서 유튜브 영상크리에이터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

 

2013년 따뜻한 봄날 첫 바이크 투어가 있는 날이었다. 바이크를 즐기는 나에게는 선물같은 하루였다. 3월 10일 아침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나 오늘 투어가 있는데 금방 다녀올게~!”

그렇게 속초로 떠났다. 양평부근에서 일행을 만나고 간단한 안부를 서로에게 묻고 다들 들뜬 마음으로 속초를 향했다. 미시령고개의 터널을 가기위해 커브길을 도는데 선두가 갑자기 이유없이 넘어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선두 바로 뒤! 피하기는 했지만 원심력 때문에 가드레일에 목이 부딪치고 쓰러졌다. 동료들이 119에 신고를 했나보다. 쉴새없이 울리는 싸이렌소리! 그 이후 기억이 없다. 눈을 뜨니 중환자실이다. 수술은 이미 끝난 상태! 너무 목이 말랐다. 물좀 주세요! 간호사가 한마디 한다. “환자분 물을 드실 수 없어요~”, 그러더니 거즈에 물을 뭍혀서 입술와 입 사이에 놓았다. 물을 빨아 마시는데 정말 꿀맛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입원생활은 시작 되었다.

울고 화내고를 반복하기를 1년.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장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난 이제 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구나! 솔직히 재활훈련을 하면 장애가 점점 좋아질 줄 알았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점점 늘어날 뿐...

손가락은 물건을 잡는 것이 불가능했고 다리는 장식품과 같았다. 절망 그 자체였다.

나의 직업은 마술사! 마술사는 손이 생명과 같은데 척수 손상으로 인해서 운동신경이 나오지 않아서 마술사로서의 생명은 끝이 났다. 앞으로 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남매쌍둥이 아빠이기도하다. 결혼 10년 만에 아이들을 얻어서인지 아이들에 대한 마음은 애틋하다. 아이들이 7살이 되던 해에 내가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다. 그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 몸으로 놀아주기 시작하는 시점에 하필 척수장애인이라니...상지라도 멀쩡했으면 아이들한테 마술이라도 보여주면서 즐겁게 보낼 수 있었을텐데... 왠지 나의 욕심 때문에 하늘에서 벌을 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의 무책임했던 행동에 후회가 밀려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6개월의 병원생활을 청산하고 일상생활에 복귀를 했다. 말이 복귀지 병원에서 집으로 환경만 바뀌었을 뿐, 그 때 난 여전히 백수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놀아본 때가 거의 없는 나로써는 이런 상황이 매우 어색했다. 그래도 뭔가를 해야 했기에 척수장애인 협회라든지 나와 비슷한 장애인들을 만나서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움직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을 타는데 곤란한 상황이 온 것이다. 환승을 해야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해서 30분 이상 헤매고 사람들한테 물어서 어찌어찌 원하던 환승역에 도착을 했다. 그날의 충격이 나에게 세게 다가왔다. 다른 환승역을 가면 또 헤매겠는데...? 라는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그럼 영상으로 담아서 생각 안날 때 보자!‘ 그렇게 첫 환승역을 촬영하고 추가로 하나, 둘씩 환승영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핸드폰 용량이 다 되어서 더 이상 촬영이 안 되었다.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마술영상이 아까워서 마술강의, 공연영상을 올렸던 유튜브가 생각났던 것이다.

’그래! 맞아! 유튜브에 올리면 되겠다!’ 그렇게 결심한 이후로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에 하나, 두 개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만 보려고 유튜브에 올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들도 내가 올린 영상을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영상을 제대로 다듬어 볼까?‘, 그 이후 영상을 보기 좋게 편집하고, 자막도 넣으면서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상의 품질을 더 높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뭔지 모르지만 지금의 영상 분위기는 뭐랄까 저품질 b급보다도 못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교육기관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용관리공단의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해서 영상 관련내용을 국비로 배우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학원을 알아보던 중 난 좌절을 해야만 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학원의 접근성! 알아보는 학원마다 계단이고 통로 입구가 모두 좁아서 수동휠체어를 이용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전동휠체어를 이용해야만 하는 나에게는 모든 것이 벽이었다. 내일배움카드로 영상을 무료로 배울 수 있다는 기쁨을 뒤로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2017년 2월 모든 교육이 무료라는 정보를 알게 되어 온라인으로 교육을 신청하고 기쁜 마음으로 서울시청자미디어센터로 찾아갔다. 입구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을정도의 공간과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첫 미디어 교육이 시작 되었다. 그곳에서 영상제작기획, 내레이션, 다큐멘터리제작, 유튜브라이브 등등 1년 동안 수 많은 교육을 받았다. 시청자미디어센터가 세금으로 운영이 되니 모든 교육이 모두 무료였다. 나에게는 단비와 같은 교육이었다. 1년동안 교육을 받는 내내 장애인은 나 혼자였다.

2018년 5월 방송콘텐츠진흥재단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1인방송제작스쿨 2기수강생을 모집하는데 모든 교육비용이 무료였다. 뿐만아니라 영상 장비도 지원해주는 꽤나 매력있는 교육이었다. 꼭 뽑히고 싶었다. 선발이 되기 전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 후 최종 선발이 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최종 30인에 선정이 되었다. 역시나 장애인은 나 혼자였고 그렇게 모든 교육을 잘 마치고 2018년을 마무리했다.

2019년 3월 한국 콘텐츠진흥원에서 뉴미디어랩 1기를 모집. 신청서를 제출 했다. 이곳도 세금으로 운영이 되어 모든 교육비가 무료였으며 오히려 영상제작에 필요한 제작비를 지원해주는  든든한 교육기관이었다. 그래서인지 선발과정이 조금 까다로웠다. 10분동안 pt를하고 5분간 질의에 답을 해야하는 약간은 압박이 있는 면접을 통과해야만 했다. 무사히 잘 통과되어 2019년도 교육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곳 또한 장애인은 나밖에 없었다!

이렇게 3군데에서 교육을 받으며 2020년까지 수많은 공모전에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활동 및 수상이력

2018년

CSR필름페스티벌 – 꿈을 이루는 사회부문 대상

전라남도 1인 크리에이터대회 – 최우수상

방송콘텐츠진흥재단 1인 방송대상 – 라이브부문 대상

2018년 4월 10일~11일 척수장애인 활동가

2019년

문턱없는 경기관광 관광지 개발 참여

“같이가요가치여행” 중국여행상품개발 참여

서울영상크리에이터

서울의공원 영상크리에이터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영상크리에이터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서포터즈

산업통상자원부 지속가능경영 우수영상 공모전 – 대상

춘천시 춘천사랑 영상공모전 – 대상

경기도 뉴미디어 영상콘텐츠 공모전 – 우수상

안동시 친절안동 공모전 – 우수상

서울시 한양도성문화재 30초 영화제 – 우수상

2019년 5월 13일~15일 동료지원가

2020년

전라북도 영상크리에이터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1인크리에이터 경진대회 - 대상

국립재활원 2020보조기기 영상공모전 – 대상 보건복지부 장관상

남원시 2020 남원관광 영상공모전 – 최우수상

방송콘텐츠진흥재단 방방곳곡 시즌1 - 최우수상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보메신저

수많은 상을 받으며 성장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나는 할 수 있다는 왠지모를 막연한 자신감과 가족의 응원이었다. '아내의 응원과 남매둥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았을까?' 싶다. 매년 초에 올 해는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까? 고민을 하지만 뾰족한 수는 늘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름 대로 잘 할 수 있었던 한 가지 만큼은 확실했다.

 

“스스로 장애를 두려워하지 말고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꾸준히 밀어 붙이자”

아무것도 하지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로나로 모두 어려운시기에 있지만 잘 극복 하시리라 믿습니다~!

화이팅!!!

 

 

함박tv